Web3는 연결을 말하고, 금융은 책임을 묻는다
Web3는 개방성과 연결을 강조하지만 금융은 그 연결의 조건과 책임을 먼저 묻습니다. 디지털자산이 제도권 금융과 만나기 위해 필요한 ‘통제 가능한 연결’의 의미를 살펴봅니다.
연결이 많다고, 신뢰가 커지는 것은 아닙니다.
Web3 기업의 소개자료를 보면 자주 등장하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개방성, 상호운용성, 탈중앙화, 글로벌 연결성입니다.
서로 다른 블록체인을 연결하고,
중간 사업자 없이 자산을 이동시키고,
누구나 네트워크에 참여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분명 Web3가 만들어낸 중요한 변화입니다.
그런데 같은 기술로
은행이나 금융회사와 이야기를 시작하면 질문이 조금 달라집니다.
“몇 개의 네트워크와 연결되나요?”보다 먼저 이런 질문이 나옵니다.
- 누가 사용할 수 있나요?
- 이상한 거래가 발생하면 막을 수 있나요?
- 문제가 생겼을 때 되돌릴 수 있나요?
- 사고가 발생하면 누가 책임지나요?
기술기업 입장에서는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금융의 관점에서는 꽤 자연스러운 질문입니다.
Web3는 얼마나 자유롭게 연결할 수 있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금융은 그 연결의 결과를 누가 책임질 수 있는가까지 확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연결이 많아질수록 새로운 문제가 생깁니다
예를 들어 디지털자산 월렛이 하나 있다고 생각해보겠습니다.
이 월렛이 한 개의 블록체인에서만 작동하는 것보다
여러 블록체인과 연결되고, 다양한 토큰을 지원하며,
외부 DeFi 서비스까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면
사용자에게는 훨씬 매력적일 수 있습니다.
기술적으로도 더 발전된 서비스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연결이 하나 추가될 때마다 확인해야 할 것도 늘어납니다.
새로운 네트워크는 안전한지,
연결되는 상대방은 누구인지,
의심스러운 주소와 거래하지 않는지,
해킹이나 장애가 발생하면 어디까지 영향을 받는지,
고객 자산을 보호하기 위해 거래를 중단할 수 있는지 등을 살펴봐야 합니다.
기술에서 연결은 기능이지만, 금융에서 연결은 동시에 책임의 범위가 됩니다.
그래서 연결이 많다는 사실 자체가 금융회사에는 곧바로 장점이 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는가입니다.
왜 금융은 이렇게 많은 통제를 요구할까요?
은행이 고객의 송금을 처리한다고 생각해보겠습니다.
고객이 버튼을 눌렀다고 해서 은행이 무조건 돈을 보내는 것은 아닙니다.
누가 보내는지 확인하고,
잔액과 한도를 확인하고,
이상거래 여부를 살펴보고,
필요하다면 거래를 보류하거나 추가 확인을 합니다.
돈을 잘못 보냈거나 금융사기가 발생하면 신고와 분쟁처리 절차도 있습니다.
고객에게 보이는 것은 단순한 ‘송금 버튼’이지만
그 뒤에는 상당히 많은 통제 장치가 존재합니다.
이것은 금융회사가 혁신에 소극적이어서만은 아닙니다.
금융은 돈을 움직이는 산업인 동시에,
그 결과에 책임을 지는 산업이기 때문입니다.
Web3에서는
코드를 신뢰하고 사용자가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는 구조가
상대적으로 자연스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도권 금융에서는 “코드가 그렇게 실행했습니다”라는 설명만으로
고객 피해나 법적 책임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결국 금융회사는
기술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순간뿐 아니라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때까지 설계해야 합니다.
그래서 같은 기술을 두고 서로 다른 말을 합니다
Web3 기업이 자신의 기술을 설명한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습니다.”
기술적으로는 장점입니다.
하지만 금융회사는 이렇게 묻습니다.
“그렇다면 접근하면 안 되는 사람은 어떻게 막습니까?”
Web3 기업은 말합니다.
“자산을 자유롭게 전송할 수 있습니다.”
금융회사는 다시 묻습니다.
“사기 주소나 제재 대상 주소로 보내는 것은 어떻게 막습니까?”
Web3 기업은 말합니다.
“여러 프로토콜과 자유롭게 연결할 수 있습니다.”
금융회사는 묻습니다.
“그중 하나에 문제가 생기면 고객 피해를 어디에서 차단할 수 있습니까?”
어느 한쪽이 틀린 질문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기술을 서로 다른 목적에서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Web3는 가능성의 범위를 넓히려 합니다.
금융은 허용 가능한 범위를 명확하게 하려 합니다.
한쪽은 확장을 이야기하고, 다른 한쪽은 책임을 묻습니다.
두 산업의 협업이 어려워지는 이유도 상당 부분 이 차이에서 생깁니다.
그렇다면 제도권 금융은
Web3의 개방성을 포기해야 할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모든 연결을 막는 방식으로 디지털자산 서비스를 만들면
기존 금융서비스와 크게 다르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용자가 디지털자산과 Web3에서 기대하는 중요한 가치는
결국 연결과 확장에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아무런 통제 없이 모든 연결을 허용하는 것도
금융회사에는 현실적인 선택이 아닙니다.
필요한 것은 둘 사이의 중간지대입니다.
저는 이를 ‘통제 가능한 연결(Controlled Connectivity)’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모든 주소로 송금을 허용하는 대신
위험도가 높은 주소는 추가 확인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서비스를 처음부터 열기보다
검증된 네트워크와 프로토콜부터 단계적으로 연결할 수도 있습니다.
개인 고객과 기관 고객의 거래 한도를 다르게 설정하거나,
일정 금액 이상에서는 추가 승인을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연결을 허용하되
이상 징후가 발견되면 거래를 멈출 수 있는 장치도 필요합니다.
핵심은 연결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연결에 경계를 만드는 것입니다.
기술의 경쟁력과 협업의 경쟁력은 다를 수 있습니다
Web3 기업이 금융회사와 협업하려 한다면
기술적인 장점만 설명해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 기술로 이것도 할 수 있습니다.”
“이 네트워크도 연결할 수 있습니다.”
“더 빠르고 더 개방적입니다.”
물론 모두 중요합니다.
하지만 제도권에서 실제 사업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한 단계 더 설명해야 합니다.
누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
누가 이상을 발견하고 거래를 멈출 수 있는지.
장애나 사고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복구할 것인지.
그리고 최종 책임은 누가 질 것인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기술이 금융서비스가 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것이 Web3의 장점을 없애는 과정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개방성과 연결성을
제도권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번역하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디지털자산 금융의 경쟁력은
결국 ‘경계 설계’에 있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 스테이블코인, 디지털월렛, 토큰화 자산이
기존 금융과 더 많이 연결될수록 이 문제는 반복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완전히 닫힌 금융시스템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모든 것을 자유롭게 연결하는 시스템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도 어렵습니다.
결국 경쟁력은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데 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디까지 열고, 어디에서 통제하며, 문제가 생겼을 때
누가 개입할 것인지 정교하게 설계하는 능력이 중요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Web3와 금융이 만나는 지점에서 필요한 질문도 바뀌어야 합니다.
“얼마나 많이 연결할 수 있는가?”뿐 아니라,
“그 연결을 얼마나 책임 있게 운영할 수 있는가?”
를 함께 물어야 합니다.
개방성은 여전히 중요한 기술 경쟁력입니다.
하지만 제도권 금융과 만나는 순간, 개방성만으로 신뢰가 만들어지지는 않습니다.
기술의 경쟁력은 연결에서 나올 수 있지만,
금융의 신뢰는 통제 가능한 연결에서 만들어집니다.
by Louis Kim, with 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