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큰화한다고 없던 유동성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자산을 토큰으로 쪼갠다고 없던 유동성이 자동으로 생기지는 않습니다. 토큰화의 초기 가치는 비유동자산의 분할보다 이미 거래되는 자산을 더 빠르게 움직이고 결제·정산하는 데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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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WA 토큰화의 첫 시장은 ‘쪼개야 팔리는 자산’이 아닐 수 있습니다


RWA(Real World Asset) 토큰화를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사례가 있습니다.

부동산 한 채를 수천 개의 토큰으로 나누거나,
비싼 미술품을 작은 단위로 쪼개 여러 사람이 투자할 수 있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이런 설명을 들으면 토큰화의 가장 큰 장점은 자연스럽게
‘쪼개서 팔 수 있다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조각투자와 토큰증권 논의는
부동산, 미술품, 비상장주식처럼
일반 투자자가 접근하기 어렵거나
거래가 활발하지 않은 자산을 중심으로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질문이 남습니다.

자산을 잘게 나누기만 하면 정말 더 잘 팔리게 될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토큰화는 자산을 나눌 수 있게 만들 수는 있지만,
그 자산을 사고 싶어 하는 사람까지 만들어주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쪼갠다고 유동성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10억 원짜리 건물을 1만 개의 토큰으로 나누면, 한 토큰의 가격은 10만 원이 됩니다.

기존에는 10억 원이 있어야 살 수 있었던 자산에 10만 원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됩니다.

분명 중요한 변화입니다.

하지만 투자 접근성이 좋아졌다는 것과 거래가 활발해진다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10만 원짜리 토큰을 사려는 사람이 없다면
가격을 아무리 잘게 나누어도 거래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고 싶은 사람이 있어야 하고,

팔고 싶은 사람도 있어야 하며,

적절한 가격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하고,

필요할 때 거래 상대방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시장조성자, 거래 인프라, 정보, 신뢰도 필요합니다.

유동성은 기술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장 참여자의 수요와 공급으로 만들어집니다.

블록체인 위에 올렸다는 사실만으로
비유동자산이 유동자산으로 바뀌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토큰화의 초기 시장을 다른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히려 이미 잘 팔리는 자산이 먼저 움직일 수 있습니다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의 움직임을 보면 흥미로운 흐름이 나타납니다.

초기 토큰화의 대상이 꼭 희귀한 부동산이나 미술품일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국채, 주식, 펀드, 담보자산처럼
이미 거래 수요가 충분한 금융자산이 중요한 후보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이미 잘 거래되고 있는 자산을 왜 굳이 토큰화해야 할까요?

답은 새로운 투자자를 만드는 데만 있지 않습니다.

이미 존재하는 거래를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금융시장에서는
자산을 사고파는 순간과 실제 소유권과 돈이
최종적으로 이전되는 순간 사이에 여러 단계가 존재합니다.

거래가 체결되고,

거래내역이 확인되고,

청산이 이루어지고,

증권과 현금이 이동하고,

각 기관의 장부가 맞는지 대사합니다.

자산 자체는 이미 전자적으로 존재하지만
여러 기관의 시스템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시간과 운영비용이 발생합니다.

토큰화가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지점은 여기에 있습니다.

자산의 발행·이전·담보 설정·결제 과정을 동일하거나
서로 연결된 디지털 인프라에서 처리할 수 있다면
자산이 움직이는 방식 자체를 단순화할 가능성이 생깁니다.

따라서 토큰화의 첫 번째 큰 시장은

‘쪼개야 팔리는 자산’이 아니라
‘이미 잘 팔리지만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자산’

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산만 토큰화해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더 중요한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주식을 토큰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해보겠습니다.

투자자가 토큰화된 주식을 사고 싶습니다.

주식은 블록체인 위에서 즉시 이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구매대금은 기존 은행망을 통해 다음 영업일에 움직여야 한다면 어떨까요?

자산은 24시간 움직일 수 있는데
돈은 기존 금융시스템의 운영시간에 맞춰 움직여야 합니다.

결국 전체 거래 속도는 느린 쪽에 맞춰집니다.

자산의 디지털화만으로는 금융거래 전체가 디지털화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토큰화 시장에서는 자산만큼 중요한 것이
결제자산(Settlement Asset)입니다.

예를 들어 토큰화된 국채를 산다면,

한쪽에서는 토큰화된 국채가 이동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디지털머니가 동시에 이동해야 합니다.

자산을 넘겼는데 돈을 받지 못하거나,
돈을 보냈는데 자산을 받지 못하는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금융에서는 이를 DvP(Delivery versus Payment)라고 합니다.

자산의 인도와 대금의 지급을 서로 연결하는 것입니다.

기존 금융에서도 매우 중요한 원칙입니다.

토큰화 금융에서도 본질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자산과 돈이 모두 디지털 네트워크 안에서 움직일 수 있다면
DvP를 더 빠르고 자동화된 형태로 구현할 가능성이 생깁니다.


그래서 디지털머니와 토큰화는 따로 보기 어렵습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스테이블코인, 예금토큰, CBDC가
왜 토큰화 논의에 계속 등장하는지도 이해하기 쉬워집니다.

이들은 단순히 새로운 결제수단 후보가 아닙니다.

토큰화된 금융자산을 사고파는 데 필요한
‘돈의 레일’이 될 가능성
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국채가 토큰화됐는데 결제를 위해
다시 기존 은행 시스템으로 돌아가야 한다면
블록체인의 장점을 충분히 활용하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자산과 결제수단이
모두 같은 디지털 환경에서 움직일 수 있다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거래와 결제를 더 가깝게 만들고,

담보를 필요한 순간 이동시키고,

자산을 매각한 자금을 다른 거래에 다시 사용하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습니다.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이것이 단순한 ‘거래 속도’의 문제가 아닙니다.

돈과 담보가 놀고 있는 시간을 줄이는 자본효율성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유즈케이스도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이야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질문 중 하나가 있습니다.

“편의점에서 사용할 수 있을까요?”

“온라인 쇼핑에 쓸 수 있을까요?”

물론 중요한 활용처입니다.

하지만 토큰화된 금융시장이 커진다면 조금 다른 질문도 필요합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토큰화된 금융자산을 결제하고 정산하는 원화 인프라가 될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향후 국채, 펀드, 증권, 담보자산이 온체인 환경에서 이동하기 시작한다면
그 반대편에는 원화 결제수단이 필요합니다.

그 역할을 예금토큰이 할 수도 있고,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할 수도 있으며,

다른 형태의 디지털머니가 담당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수단이 승자가 될지는 아직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디지털머니의 유즈케이스를 소매결제만으로 제한해서 볼 필요가 없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기관 간 자산 거래와 결제·정산에서
먼저 경제성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토큰화의 가치는
‘무엇을 토큰으로 만들었는가’보다
‘무엇이 달라졌는가’로 봐야 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금융자산이 토큰화될 것입니다.

그때마다 새로운 토큰이 발행됐다는 사실 자체가 주목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장의 성공을 판단하는 기준은 조금 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토큰화를 통해 실제 거래 시간이 줄었는지,

결제 실패 위험이 감소했는지,

담보를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됐는지,

중복된 장부 관리와 대사 과정이 줄었는지,

기존에 접근하기 어려웠던 투자자가 실제로 시장에 들어왔는지를 봐야 합니다.

그래야 토큰화가 단순히 자산의 표시 방식을 바꾼 것인지,
아니면 금융시장의 작동 방식을 바꾼 것인지 구분할 수 있습니다.

토큰화의 가능성은 분명 큽니다.

하지만 토큰이라는 기술이 유동성을 만들어주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초기에는 이미 시장과 유동성이 존재하는 자산에서,
그 자산을 더 빠르고 더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것에서
가치가 먼저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RWA 토큰화를 볼 때 질문을 바꿔볼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을 쪼개서 팔 수 있을까?” 보다

“지금 잘 거래되고 있는 자산을 얼마나 더 잘 움직이게 만들 수 있을까?”

그리고 한 단계 더 나아가,

“그 자산과 함께 움직일 디지털머니는 준비되어 있는가?”

이 질문들이 향후 토큰화 시장의 방향을 이해하는 데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by Louis Kim, with Ari


참고한 자료

Citi Institute, Tokenization 2030: Wall Street On-Chain
Citi GPS: Global Perspectives & Solutions, June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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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Citi Institute가 제시한 공개시장 증권과 유동성 높은 담보자산의 초기 토큰화 가능성, 그리고 regulated stablecoin과 tokenized deposit을 on-chain settlement의 기반으로 보는 시각을 참고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국내 RWA·토큰증권 논의에서 익숙한 ‘분할소유’ 프레임을 다시 살펴보고, 토큰화의 초기 가치가 자산을 쪼개는 데보다 결제·정산 효율을 높이는 데서 먼저 나타날 가능성까지 함께 검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