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의 디지털월렛은 계좌일까요, 별도의 지갑일까요?

디지털월렛의 화면은 비슷해 보여도 돈을 기존 은행계좌에 연결할지, 별도의 서비스 잔액으로 관리할지에 따라 금융구조는 크게 달라집니다. Account-linked와 Balance-based의 차이와 Dual Rails의 가능성을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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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좌방식(Account-linked)과
계정방식(Balance-based)이 만드는 서로 다른 금융 구조


은행이 디지털월렛을 만든다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화면입니다.

어떤 자산을 보여줄 것인지,
어떻게 보내고 받을 것인지,
기존 모바일뱅킹과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같은 문제입니다.

하지만 화면을 설계하기 전에 더 근본적인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월렛 안의 돈과 자산을 기존 은행 계좌에 연결할 것인가,
아니면 별도의 서비스 잔액으로 관리할 것인가
입니다.

사용자에게는 둘 다 비슷한 ‘잔액’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완전히 다른 운영구조가 만들어집니다.

이 글에서는 편의상 두 구조를

Account-linked
기존 은행 계좌와 직접 연결되는 방식

Balance-based
계좌와 분리된 서비스 전용 잔액을 운영하는 방식

으로 나누어 보겠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Balance-based는 디지털화폐의 기술적 분류라기보다,
월렛 서비스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에 대한 설계 관점의 표현입니다.


트래블카드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해외여행을 위해 외화를 사용하는 서비스를 생각해보겠습니다.

한 가지 방법은 기존 은행 계좌와 서비스를 바로 연결하는 것입니다.

사용자가 이미 가진 계좌에서 필요한 자금을 가져오고,
환전하거나 결제할 때도 그 계좌를 기준으로 처리합니다.

이것이 Account-linked에 가깝습니다.

다른 방법은 서비스 안에 별도의 잔액을 만드는 것입니다.

사용자가 30만원을 충전하면 서비스 안에 ‘30만원 상당의 잔액’이 생기고,
이후에는 그 잔액을 기준으로 환전이나 결제를 처리합니다.

이것이 Balance-based에 가깝습니다.

사용자가 보는 화면은 비슷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뒤에서 관리되는 돈의 성격과 책임구조는 상당히 다릅니다.


Account-linked의 가장 큰 장점은
기존 금융과의 연결입니다


은행에는 이미 고객의 계좌가 있습니다.

고객확인(KYC)도 되어 있고,
거래한도와 이상거래 탐지,
자금세탁방지(AML) 체계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디지털월렛을 기존 계좌와 연결하면
이런 금융 인프라를 활용하기가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예를 들어
고객이 원화를 스테이블코인이나
다른 디지털자산으로 바꾸려고 할 때를 생각해보겠습니다.

구조는 단순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은행계좌 → 디지털월렛 → 디지털자산

반대로 디지털자산을 매도하거나 상환해서 원화로 돌아오면

디지털자산 → 디지털월렛 → 은행계좌

로 연결할 수 있습니다.

은행 입장에서는 자금의 시작점과 도착점이
기존 고객 계좌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고객과 자금 흐름을 파악하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합니다.

송금, 외환, 결제 같은 기존 금융서비스와 연결하는 것도 자연스럽습니다.

그래서 은행이 디지털자산 서비스를 처음 시작할 때
Account-linked 구조는 현실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계좌가 있다고
온체인 리스크까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기존 계좌와 연결한다고 해서
디지털자산 거래의 위험까지 기존 시스템이 자동으로 관리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고객이 은행 계좌에서 원화를 출금해
외부 지갑으로 디지털자산을 보낸다면 새로운 정보가 필요합니다.

그 지갑 주소는 누구의 것인지,

제재나 금융범죄와 관련된 주소는 아닌지,

어떤 거래소나 프로토콜과 연결되어 있는지,

거래 상대방의 위험은 어느 정도인지 등을 확인해야 합니다.

즉 기존 은행의 KYC·AML 위에
주소 스크리닝, 온체인 모니터링, 상대방 위험평가와 같은
새로운 통제
가 추가되어야 합니다.

Account-linked는 기존 금융과의 연결에는 강하지만,
온체인 세계까지 기존 통제가 그대로 확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Balance-based의 장점은 유연성입니다


이번에는 계좌와 분리된 서비스 전용 잔액을 생각해보겠습니다.

사용자는 은행 계좌를 직접 사용하지 않고 서비스 안의 별도 잔액을 사용합니다.

이 방식은 서비스 설계가 상대적으로 자유롭습니다.

고객 유형에 따라 서로 다른 한도를 적용할 수도 있고,
소액 사용자에게는 간소화된 절차를 적용할 수도 있으며,
원화뿐 아니라 포인트, 마일리지, 디지털자산 등
다양한 자산을 하나의 서비스 안에 표현하기도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은행 계좌라는 기존 상품구조에 모든 기능을 맞출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핀테크나 플랫폼 서비스가
별도 잔액 구조를 선호하는 이유도 이런 확장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사용자 입장에서도 계좌를 하나 더 개설하는 것보다
앱을 설치하고 필요한 금액만 충전해 사용하는 방식이
더 간단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특히 외국인, 청소년, 소액 사용자처럼
기존 은행 계좌 중심 서비스와 접점이 적은 고객에게는
유용한 방식이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잔액이 무엇인가’입니다


Balance-based 구조에서는 또다른 중요한 질문이 생깁니다.

화면에 보이는 10만원은 법적으로 무엇일까요?

은행 예금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습니다.

선불전자지급수단일 수도 있고,
별도로 보관된 고객자금일 수도 있으며,
디지털자산이나 포인트일 수도 있습니다.

사용자 화면에는 모두 ‘100,000’이라는 숫자로 보이지만
자산의 법적 성격이 다르면 보호 방식도 달라집니다.

예금자보호를 받을 수 있는지,
서비스 회사가 파산하면 고객자산은 어떻게 되는지,
준비자산은 어디에 보관되는지,
환불은 언제 가능한지,
오류나 해킹이 발생하면 누가 책임지는지 등을 별도로 설계해야 합니다.

따라서 Balance-based 구조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충전식으로 만들면 편하다’가 아닙니다.

잔액의 법적 성격과 고객의 권리를 명확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유연성이 커질수록 책임구조도 더 정교해져야 합니다.


두 방식을 비교하면 무엇이 더 좋을까요?

단순하게 비교하면 이런 차이가 있습니다.

구분 Account-linked Balance-based
중심 구조 기존 은행계좌 별도 서비스 잔액
기존 KYC·AML 활용 상대적으로 용이 별도 설계 필요 가능
은행서비스 연결 강함 상대적으로 독립적
사용자 확장성 계좌 보유가 전제되기 쉬움 다양한 고객 유형 수용에 유리
자산 구성 금융상품 중심 포인트·디지털자산 등 확장에 유연
핵심 과제 온체인 통제 추가 잔액의 법적 성격·보호구조
강점 신뢰 · 규율 · 금융 연결 유연성 · 확장성 · 플랫폼 연결


그러면 은행은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할까요?

저는 꼭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고객에게는 하나의 월렛, 내부에는 두 개의 레일


사용자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이 Account-linked 구조를 사용하고 있는지,
Balance-based 구조를 사용하고 있는지가 아닙니다.

앱을 열었을 때
원화도 보이고,
외화도 보이고,
스테이블코인도 보이고,
토큰화된 금융자산도 보이며,
필요할 때 서로 전환하고 보낼 수 있으면 됩니다.

사용자가 원하는 것은 통합된 경험입니다.

하지만 금융회사 내부까지 모든 자산을 동일한 방식으로 처리할 필요는 없습니다.

예금이나 외환처럼 기존 금융시스템 안에서 관리하는 것이 적절한 자산은
계좌 레일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디지털자산이나 포인트처럼
별도의 라이프사이클과 권한 관리가 필요한 자산은
별도의 월렛·잔액 레일에서 관리할 수 있습니다.

사용자에게는 하나의 화면이지만,

내부에는 서로 다른 장부와 통제체계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를 Dual Rails라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Account Rail
예금·외환·기존 지급결제
Digital Asset Rail
스테이블코인·토큰화 자산·기타 디지털자산

그리고 월렛이 두 레일을 연결하는 접점이 되는 구조입니다.


월렛의 핵심은 ‘무엇을 담느냐’보다 ‘어떻게 연결하느냐’입니다


디지털월렛을 단순히 여러 자산을 보여주는 화면으로 생각하면
결국 새로운 메뉴 하나를 만드는 수준에 머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월렛을
서로 다른 금융 레일을 연결하는 인터페이스로 보면
역할이 달라집니다.

고객은 은행계좌에 있는 원화를 스테이블코인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스테이블코인으로 해외에 지급하고,
다시 현지 통화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토큰화된 금융자산을 구매할 때 은행예금이나 디지털머니로 결제할 수도 있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각 자산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억지로 통합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다른 자산의 법적 성격과 통제체계를 유지하면서
고객에게는 자연스럽게 연결된 경험을 제공하는 것
입니다.


은행 월렛의 차별화도 여기서 나올 수 있습니다


Web3 월렛은 다양한 네트워크와 자산을 자유롭게 연결하는 데 강점이 있습니다.

은행은 같은 방식으로 경쟁하기 어렵고,
꼭 그렇게 해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은행이 잘할 수 있는 영역은
기존 계좌, 외환, 지급결제, 고객확인과
디지털자산을 하나의 신뢰 구조 안에서 연결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은행 월렛의 경쟁력은

"얼마나 많은 코인을 지원하는가"

보다

"기존 금융의 신뢰와
디지털자산의 확장성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는가"

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디지털월렛의 첫 질문은 화면이 아닐 수 있습니다.

“어떤 기능을 넣을까요?”보다 먼저

“이 돈과 자산은 어느 장부에서 관리되고, 어떤 권리와 책임 아래 움직일까요?”

를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답은 하나의 방식만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에게는 하나의 월렛을 제공하되
내부에서는 목적에 맞는 여러 금융 레일을 함께 운영하는 것
에 있을 수 있습니다.

by Louis Kim, with Ari


이 글은 BIS가 설명한 기존 은행예금과 Tokenised Deposit의 연속성, 그리고 Bank of England가 Digital Pound에서 제시한 Wallet과 실제 잔액 원장을 분리하는 구조를 참고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은행의 Digital Wallet을 하나의 형태로 정의하기보다, 기존 계좌의 자금에 접근하는 Account-linked 구조와 Wallet 자체가 별도의 디지털머니 잔액을 관리하는 Balance-based 구조로 나누어 살펴봤습니다.
실제 은행 Wallet은 두 모델 중 하나만 선택하기보다, 기존 예금계좌와 새로운 디지털머니 잔액을 동시에 연결하는 Dual-Rail 구조로 발전할 가능성도 함께 살펴봤습니다.

참고한 자료

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 (BIS)
Stablecoins versus tokenised deposits: implications for the singleness of money

BIS Bulletin No. 73 · April 2023
원문 보기 · PDF 다운로드

토큰화 예금(Tokenised Deposit)이 기존 은행예금과 마찬가지로 은행에 대한
청구권을 유지하면서 지급·결제 기능을 디지털 환경으로 확장하는 구조와,
Stablecoin처럼 별도의 이전 가능한 디지털 청구권이 유통되는 구조의 차이를 참고했습니다.
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 (BIS)
Blueprint for the future monetary system: improving the old, enabling the new

BIS Annual Economic Report · June 2023
원문 보기 · PDF 다운로드

Tokenised Deposit이 기존 예금과 동일하게 상업은행에 대한 청구권을 유지하면서 Programmable Platform에서 새로운 기능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과,
Stablecoin이 발행자에 대한 이전 가능한 청구권으로 작동한다는 구조적 차이를 참고했습니다.
Bank of England
Response to the Digital Pound Consultation Paper

January 2024
원문 보기

Digital Pound Wallet 사업자가 고객과 직접 관계를 맺고 Wallet 서비스를 제공하더라도, 실제 고객의 Digital Pound 잔액은 Wallet 사업자의 대차대조표가 아니라 중앙은행의 Core Ledger에 기록되는 ‘Pass-through Wallet’ 구조를 참고했습니다.
Bank of England
Intermediary roles and scheme rulebook – Design Note

March 2025
원문 보기

Wallet이 반드시 자산 자체를 보유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사용자 인증·잔액 조회·거래 이력·지급지시와 같은 고객 접점을 제공하면서
실제 잔액은 별도의 Core Ledger에서 관리될 수 있다는 구조를 참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