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코인 컨소시엄: 발행보다 어려운 것은 거버넌스다

여러 기관이 하나의 스테이블코인을 만든다고 좋은 컨소시엄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의사결정권, 운영표준과 책임을 어떻게 배분해야 하는지 Stablecoin Governance의 관점에서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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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기관이 하나의 토큰을 운영할 때 중요한 것은 누가 참여하느냐보다, 누가 무엇을 결정하고 책임지느냐입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논의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컨소시엄 이야기가 나옵니다.

은행은 신뢰와 금융 인프라를 가지고 있고,
IT기업은 기술을 가지고 있으며,
플랫폼은 고객 접점을 가지고 있고,
결제사업자는 사용처를 가지고 있습니다.

각자의 강점을 합치면
혼자 만드는 것보다 훨씬 강한 스테이블코인을 만들 수 있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참여사가 늘어날수록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누가 최종 결정을 내릴 것인가.

스테이블코인은 기술적으로는 하나의 Token이지만,
운영 측면에서는 여러 회사의 이해관계가 연결된 금융시스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토큰을 여러 회사가 운영한다는 것

예를 들어 다섯 개 금융회사가
하나의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공동으로 운영한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고객이 갖는 것은 하나의 토큰입니다.

1 KRW Stablecoin = 1 KRW

라는 하나의 약속입니다.

하지만 그 뒤에서는 여러 기관이 움직입니다.

누군가는 준비자산을 관리하고,
누군가는 발행과 상환을 담당하고,
누군가는 Wallet을 제공하고,
누군가는 AML을 수행하고,
누군가는 가맹점과 사용처를 확보합니다.

문제가 없을 때는 역할을 나누면 됩니다.

어려운 것은 문제가 생겼을 때입니다.

준비자산에 차이가 발생하면 누가 발행을 중단할까요?
특정 Wallet에서 이상거래가 발견되면 누가 거래를 제한할까요?
Smart Contract에 취약점이 발견되면 누가 긴급 조치를 결정할까요?
특정 참여기관에 장애가 발생하면 다른 기관이 대신 상환해야 할까요?

결국 컨소시엄의 진짜 문제는

역할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보다,
예외 상황에서 누가 결정할 것인가

에 더 가깝습니다.


지분구조만으로는 거버넌스가 완성되지 않습니다

컨소시엄을 만들면 가장 먼저 논의되는 것이
출자비율과 의결권입니다.

누가 몇 %를 투자하고,
이사회는 몇 석을 가져가며,
중요 안건은 몇 %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지를 정합니다.

물론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주로 회사 차원의 거버넌스(Corporate Governance)입니다.

스테이블코인에는 하나가 더 필요합니다.

운영 거버넌스(Operational Governance)입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질문입니다.

누가 발행을 승인하는가.
누가 상환을 중단할 수 있는가.
어떤 주소를 차단할 수 있는가.
새로운 Blockchain을 누가 추가할 수 있는가.
Smart Contract를 누가 업그레이드하는가.
준비자산의 기준을 누가 변경하는가.
사고가 발생하면 누가 고객과 감독기관에 설명하는가.

이러한 결정은
주주총회를 열어 처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때로는 몇 분 안에 결정해야 합니다.

따라서 금융 인프라로서의 스테이블코인에는

지분에 따른 의결권과 별도로,
상황별 의사결정 권한(Decision Rights)을 설계해야 합니다.


모든 의사결정을 같은 방식으로 처리할 필요도 없습니다

컨소시엄의 모든 결정을
참여사 전원 합의로 처리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안전해 보이지만
운영은 매우 느려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하나의 회사가
모든 결정을 할 수 있다면 빠르지만,
공동 컨소시엄이라는 의미가 약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의사결정의 성격을 나눌 필요가 있습니다.

일상 운영(Routine Operation)

정해진 범위 안에서의 발행과 상환, 준비자산 대사,
AML 모니터링,일상적인 시스템 운영 등입니다.

이미 합의된 정책 안에서는
운영기관이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중요 변경(Material Change)

새로운 Blockchain 추가, 준비자산 정책 변경, 신규 참여사 가입,
Smart Contract의 중요한 변경, 수수료나 경제모델 변경 등입니다.

이런 결정은 컨소시엄의 위험과 사업모델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보다 높은 수준의 합의가 필요합니다.

비상 의사결정(Emergency Decision)

해킹, 대규모 이상거래, 준비자산 문제, Smart Contract 취약점, 대규모 상환,
주요 참여기관 장애 등이 발생한 경우입니다.

이때는 완전한 합의를 기다릴 수 없습니다.

누가 긴급정지 권한을 가지고 있고,
어떤 조건에서 사용할 수 있는지

사전에 정해져 있어야 합니다.

결국 좋은 거버넌스는
모든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구조가 아니라,

결정의 중요도와 긴급성에 따라 권한을 다르게 배분하는 구조 에 가깝습니다.


더 어려운 문제는 ‘권한’과 ‘책임’이 다를 때 생깁니다

컨소시엄에서는 역할을 분담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책임까지 동일하게 분산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한 플랫폼을 통해
대규모 AML 사고가 발생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고객 접점은 플랫폼이 가지고 있고,
거래 모니터링은 별도의 사업자가 수행하며,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다른 회사이고,
준비자산은 은행이 관리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고가 발생했을 때
누가 최종적으로 책임져야 할까요?

운영은 여러 곳에 분산되어 있는데
시장과 감독기관이 바라보는 책임은
특정 발행사나 금융회사로 모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컨소시엄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구조입니다.

운영의 분산(Distributed Operation)과 책임의 집중(Concentrated Accountability)이
서로 어긋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역할을 나눌 때는 항상

누가 결정하는가, 누가 실행하는가,
문제가 생기면 누가 책임지는가
를 같이 정해야 합니다.

권한 없이 책임만 지거나,
책임 없이 권한만 행사하는 구조는 오래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실제 Stablecoin에서도 거버넌스 구조는 변해왔습니다

USDC도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구조는 아니었습니다.

Circle과 Coinbase는 2018년
Centre Consortium을 통해 USDC를 공동으로 출범시켰습니다.

Centre는 USDC의 기술표준과
발행사 정책 등을 관리하는 별도의 거버넌스 기구였습니다.

하지만 2023년 Centre는 독립 조직으로서의 역할을 종료했고,
Circle이 USDC의 발행과 거버넌스를 직접 맡는 구조로 변경되었습니다.

Circle은 당시 이러한 변화가
운영과 거버넌스를 단순화하고
발행사의 직접적인 책임을 강화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사례에서 흥미로운 점은
컨소시엄이 실패했다거나 성공했다는 평가가 아닙니다.

Stablecoin의 성장 단계에 따라
적절한 거버넌스 구조도 달라질 수 있다는 점
입니다.

초기에는 여러 참여자가
표준과 생태계를 함께 만드는 것이 중요할 수 있습니다.

규모가 커지면
의사결정의 속도와 책임의 명확성이
더 중요해질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생태계는 넓게, 발행책임은 명확하게’ 가져가는 방법도 있습니다

Global Dollar Network의 USDG는
다른 형태를 보여줍니다.

거래소, Wallet, 수탁회사, 결제사업자 등
많은 기업이 Network에 참여합니다.

참여사들은 유통과 사용처 확대에 기여하고
Network의 경제모델에도 참여합니다.

하지만 USDG를 누가 발행하고
누가 상환책임을 지는지는 상대적으로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습니다.

즉,
네트워크 참여(Network Participation)와 발행 책임(Issuer Accountability)을
반드시 동일하게 가져갈 필요는 없습니다.

생태계는 여러 회사가 함께 확장하더라도,
스테이블코인의 핵심 약속에 대한 책임은
명확한 주체에 둘 수 있습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컨소시엄에서도
생각해볼 만한 구조입니다.


모든 것을 공동화하면
오히려 경쟁력이 약해질 수도 있습니다

컨소시엄에는 또 하나의 문제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공동으로 만들면
개별 참여사가 투자할 이유가 줄어들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한 회사가 많은 비용을 들여
가맹점을 확보하고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했는데,

그 결과를 다른 참여사가
동일하게 사용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공동 인프라는 커질 수 있지만
마지막 사용처를 만드는 투자는 줄어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컨소시엄에서는
무엇을 공동으로 할 것인지와 무엇을 경쟁할 것인지를 구분해야 합니다.

스테이블코인의 신뢰를 만드는 영역은
공통규칙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준비자산, 발행과 상환, AML과 제재, 보안,
Smart Contract 관리, 사고 대응, 공통 기술표준 등입니다.

반면
Wallet의 사용자경험, 가맹점 확보, 기업 결제 서비스,
해외송금, 금융상품 연결, 고객 혜택 등에서는 각 참여사가 경쟁할 수 있습니다.

이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신뢰의 규칙은 함께 만들고,
서비스는 각자의 방식으로 경쟁하는 구조입니다.

모든 것을 통일하면 혁신이 줄어들고,
모든 것을 개별화하면 하나의 Stablecoin으로 운영하기 어렵습니다.

거버넌스는 이 경계를 정하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참여할 때보다 나갈 때의 규칙이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컨소시엄을 처음 만들 때는
대부분 가입 조건을 고민합니다.

누가 참여할 수 있는지,
얼마를 출자해야 하는지,
어떤 역할을 맡을지 등을 정합니다.

하지만 장기간 운영되는 금융 인프라라면
반대 방향도 설계해야 합니다.

참여기관이 사업을 중단하면 어떻게 할까요?
규제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어떻게 할까요?
보안사고를 반복하면 어떻게 할까요?
컨소시엄에서 탈퇴할 때
보유한 고객과 준비자산은 어떻게 이전할까요?

운영 중인 Smart Contract 권한은 어떻게 회수할까요?

즉 거버넌스에는

진입(Entry)뿐 아니라
퇴출과 이전(Exit & Transition)도 포함되어야 합니다.

좋을 때만 함께하는 규칙이 아니라,
관계가 끝날 때도 시스템이 흔들리지 않는 규칙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컨소시엄의 첫 결과물은 Token보다 Rulebook일 수 있습니다

스테이블코인 컨소시엄이 만들어지면
가장 눈에 보이는 결과물은 Token입니다.

Blockchain을 선정하고,
Smart Contract를 만들고,
Wallet에서 Token을 발행하면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도 빠르게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사업화에 앞서
더 먼저 만들어야 할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공동 운영규칙(Rulebook)입니다.

최소한 다음 질문에는
참여사들이 같은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누가 결정하는가 — Decision Rights
누가 실행하는가 — Operating Responsibility
누가 위험을 부담하는가 — Risk & Loss Allocation
누가 고객과 당국에 설명하는가 — Accountability
기여와 수익은 어떻게 배분하는가 — Incentive
누가 들어오고 나갈 수 있는가 — Entry & Exit

Token은 Smart Contract로 만들 수 있지만,
이 질문에 대한 합의는
코드만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컨소시엄의 경쟁력은 참여사 숫자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참여사가 많으면
고객도 많고, 채널도 많고, 유동성도 커질 수 있습니다.

분명한 장점입니다.

하지만 참여사가 많다는 사실이
곧 좋은 컨소시엄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참여사가 늘어날수록
이해관계도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회사가 로고를 올렸는가보다,

평상시에는 빠르게 운영되고,
중요한 변화에는 충분한 합의를 거치며,
위기에는 명확한 주체가 결정할 수 있는가
입니다.

결국 하나의 스테이블코인을 운영한다는 것은
여러 회사가 하나의 기술을 공유하는 것보다

공동의 금융적 약속을 함께 지키는 일 에 더 가깝습니다.

운영 주체는 여러 곳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객이 받는 토큰은 한 가지고,
그 토큰이 약속하는 가치도 하나입니다.

그래서 컨소시엄의 거버넌스가 잘 설계되었다는 것은

“문제가 생겼을 때 누가 결정하고 누가 책임지는가”에
모두가 같은 답을 가지고 있다는 것

일 수 있습니다.

by Louis Kim, with Ari


참고한 자료

Committee on Payments and Market Infrastructures (BIS)
Investigating the Impact of Global Stablecoins

October 2019
PDF 다운로드

Stablecoin Arrangement에서 거버넌스, 발행·상환, 준비자산 관리 등 각 기능과 책임주체의 관계를 참고했습니다.
Circle & Coinbase
Ushering in the next chapter for USDC

August 2023
원문 보기

Centre Consortium 종료 이후 Circle이 USDC 발행과 거버넌스 책임을 직접 담당하게 된 구조 변화를 참고했습니다.
Global Dollar Network
Global Dollar Network / USDG

Global Dollar Network 보기

다수의 Network 참여사와 Stablecoin 발행책임을 구분해 운영하는 사례를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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