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자산 정책에서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예측 가능성이다
디지털자산 제도화에서 중요한 것은 법을 얼마나 빨리 만드는가만이 아닙니다. 시장이 투자와 시스템 구축을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정책의 방향과 순서를 예측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디지털자산 제도화가 늦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법을 빨리 만들어야 하고,
해외보다 뒤처지지 않아야 하며,
시장에 명확한 신호를 줘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물론 속도는 중요합니다.
하지만 금융회사나 기업의 입장에서 더 중요한 것은
법이 몇 달 빨리 통과되는가보다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제도가 만들어질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가입니다.
우리는 아직 2017년의 렌즈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2017년 국내 가상자산 시장을 떠올리면
투기 과열과 거래소 규제가 먼저 생각납니다.
당시 정책의 중심도
시장을 어떻게 제한하고 위험을 통제할 것인가에 가까웠습니다.
이 경험은 강하게 남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디지털자산 정책을 이야기하면
‘허용인가 금지인가’라는 구도로 바라보기 쉽습니다.
하지만 제도는 이미 다른 단계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를 위한 법이 시행됐고,
금융위원회에는 가상자산 전담 조직이 만들어졌습니다.
이제 정책 논의도 단순한 거래 규제를 넘어
Stablecoin, Digital Asset 사업자, 거래소 지배구조,
내부통제와 금융시장 연결까지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2026년 3월 금융위원회 가상자산위원회에서도
디지털자산기본법 정부 검토안을 놓고
사업자 규율체계와 시장 안전장치,
Stablecoin 발행 구조 등을 함께 논의했습니다.
정책의 대상이
‘가상자산 거래’에서
‘디지털자산 금융시스템’으로 넓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법이 통과된다고
서비스를 바로 시작할 수 있는건 아닙니다
제도가 만들어지면
기업이 다음 날 바로 서비스를 출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금융회사는 더 그렇습니다.
새로운 서비스를 준비하려면
사업모델을 정하고, 시스템을 설계하고,
내부통제와 AML 체계를 검토하고,
예산과 인력을 확보해야 합니다.
외부 사업자와 계약하거나
새로운 인프라를 구축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이 과정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Stablecoin 사업을 준비한다고 생각해보겠습니다.
발행 주체가 어떻게 정해질지,
은행의 참여 요건은 무엇인지,
준비자산은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어떤 사업자가 인가 대상이 되는지가 불분명하다면
기업은 투자를 결정하기 어렵습니다.
법이 늦어지는 것 자체보다
어떤 방향으로 준비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태가 길어지는 것이 더 큰 부담이 됩니다.
불확실성에도 비용이 있습니다
정책이 결정되지 않으면
기업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여러 가능성을 동시에 준비해야 합니다.
A안이 될 경우의 시스템을 검토하고,
B안이 될 경우의 사업구조를 다시 만들고,
규제가 달라질 가능성에 대비해 투자 결정을 미룹니다.
파트너 선정도 늦어집니다.
인력과 시간은 투입되지만
실제 사업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이를 규제 불확실성 비용(Regulatory Uncertainty Cost)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비용은 눈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시장 전체로 보면
중복 투자와 의사결정 지연, 사업기회의 상실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업에게는
완성된 법률이 아니더라도
'준비할 수 있을 정도의 방향성' 이 절실합니다.
예측 가능하다는 것은
모든 것을 미리 확정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새로운 시장에서
처음부터 완벽한 규칙을 만드는 것은 어렵습니다.
디지털자산처럼 기술과 사업모델이 빠르게 변하는 분야라면
규정도 계속 수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예측 가능성을
‘앞으로 규칙이 절대 바뀌지 않는 상태’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다음과 같은 상태에 가깝습니다.
어떤 원칙으로 제도를 만들고 있는지 알 수 있고,
무엇이 아직 결정되지 않았는지 알 수 있으며,
다음 단계에서 어떤 논의가 이루어질지 예상할 수 있는 것.
규칙이 바뀌더라도
그 과정과 이유를 시장이 이해할 수 있다면
기업은 준비를 계속할 수 있습니다.
Rule이 완벽하게 고정되어 있는 것보다
Rule이 만들어지는 경로가 보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느리더라도 방향이 보이면 준비할 수 있습니다
금융 규제는 빠르다고 항상 좋은 것도 아닙니다.
Stablecoin 하나만 보더라도
발행 주체, 준비자산, 상환, AML, 외환, 소비자 보호가 함께 연결됩니다.
충분한 논의 없이 빠르게 제도를 만들면
오히려 이후의 수정 비용이 더 커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속도전이 아니며,
시장에 아래와 같은 신호를 지속적으로 주는 것입니다.
“이 방향으로 제도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아직 논의 중입니다.”
“다음 단계에서는 이 문제를 결정합니다.”
그러면 금융회사도
확정된 부분부터 먼저 투자하고,
불확실한 부분은 옵션을 남겨둘 수 있습니다.
정책과 시장이 동시에 조금씩 앞으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디지털자산기본법은 하나의 법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디지털자산기본법의 의미가 큰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 법 하나로 모든 것이 해결되기 때문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이후에 이어질 여러 제도의
출발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Stablecoin 규율, 법인의 디지털자산 참여, 거래소 제도,
현물 ETF, 국경 간 거래와 외환 규율도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기본적인 방향이 정해지지 않으면
후속 제도도 함께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기본법의 역할은
단순히 새로운 규제를 하나 만드는 데 있지 않습니다.
시장이 앞으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기준점을 만드는 데 있습니다.
정책도 하나의 인프라입니다
디지털자산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Blockchain, Wallet, Custody 같은
기술 인프라를 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장이 실제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정책과 제도라는 인프라, 프레임워크가 필요합니다.
인프라는 사람들이 그 위에서
장기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을 때 의미가 있습니다.
기업이 투자하고, 인력을 채용하고,
시스템을 구축하고, 파트너십을 맺으려면
최소한 앞으로의 방향을 예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디지털자산 정책의 성과를
‘얼마나 빨리 법을 만들었는가’만으로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더 중요한 기준은
'시장이 얼마나 미리 준비할 수 있게 했는가'일 수 있습니다.
빠른 정책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새로운 금융시장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속도(Speed)보다 예측 가능성(Predictability)이
더 중요한 국가 경쟁력이 될 수 있습니다.
by Louis Kim, with Ari
참고한 자료
금융위원회
금융위원회 직제 개정안 국무회의 통과
June 1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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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금융정책관의 정규조직화와 가상자산과 신설 등 국내 디지털자산 정책을 담당하는 전담 조직이 점차 구체화되는 흐름을 참고했습니다.
금융위원회
2026년 제1차 가상자산위원회 개최
March 4,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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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자산기본법 정부 검토안과 사업자 규율, 내부통제, Stablecoin 발행 구조 등 2단계 제도 논의가 구체화되는 흐름을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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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3,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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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법 입법 일정의 지연이 Stablecoin 규율과 현물 ETF 등 후속 정책 일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내용을 참고했습니다.